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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공연 예술의 정수인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춘향가(春香歌)>는 신분을 초월한 춘향과 이몽룡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사회의 다양한 면모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깊이 있게 그려낸 걸작입니다. 단순한 연애담을 넘어, 신분 제도의 모순, 탐관오리의 횡포, 그리고 이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 의식까지 담고 있는 <춘향가>는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합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춘향가>의 정의, 역사적 개관, 주요 내용, 매력적인 등장인물, 다양한 창본의 특징, 그리고 작품이 지닌 불멸의 가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춘향가>의 정의 및 개관

<춘향가>는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과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라는, 당시 사회적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하려는 한 쌍의 연인 이야기를 판소리 형식으로 엮은 작품입니다. 조선 시대 열두 마당의 판소리 중 하나로,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여러 명창들의 노력을 통해 다듬어지고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무렵 소리판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19세기 중기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한국 판소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 <춘향가> 형성의 역사적 배경과 근원 설화

<춘향가>는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설화들이 융합되어 형성된 적층 문학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작품의 주요 플롯은 크게 <열녀설화>와 <암행어사설화>를 바탕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 주요 플롯 형성에 작용한 설화:
    • 열녀설화: 정절을 지키는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춘향의 굳건한 절개를 보여주는 전반부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동국여지승람』의 ‘지리산녀설화’와 『삼국사기』의 ‘도미설화’를 들 수 있습니다.
    • 암행어사설화: 암행어사와 기생 사이의 인연을 다룬 이야기로, 신분을 숨기고 백성을 구제하는 이몽룡의 활약상을 그린 후반부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계서야담』 등에 전하는 ‘노진 설화’, ‘김우항 설화’, ‘박문수 설화’, ‘성이성 설화’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 신원설화: 원통하게 죽은 여인의 혼을 달래는 설화로, 춘향의 억울한 옥살이와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뒷받침합니다. 남원 지방의 ‘박색녀 설화’, 밀양의 ‘아랑 설화’, ‘심수경 설화’, 그리고 조재삼의 『송남잡지』에 기록된 ‘춘양타령’ 등이 있습니다.
    • 염정설화: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설화로, 춘향과 이몽룡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근원을 설명해줍니다. 『동야휘집』에 전하는 ‘성세창 설화’ 등이 대표적입니다.
  • 삽입 플롯 형성에 작용한 설화:
    • 신물교환설화: 이별하는 연인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물건을 주고받는 이야기로, 이몽룡과 춘향이 거울과 옥지환을 나누는 장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야휘집』의 ‘홍섬의 이야기’나 ‘조위의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 수기설화: 여인이 정을 맺기 전에 남자에게 징표를 요구하는 설화로, 춘향이 이몽룡에게 불망기(不忘記)를 요구하는 장면의 근원이 됩니다. 관련 설화가 『동야휘집』에 전해집니다.
    • 몽상설화: 꿈을 통해 미래를 예견하거나 중요한 계시를 받는 이야기로, 춘향이 옥중에서 꾼 꿈을 봉사가 해몽해주는 장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봉유설』과 『동각잡기』 등에 관련 내용이 전합니다.
    • 한시설화: 시를 통해 상황을 암시하거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화로, 변 부사의 탐욕을 비판하는 이몽룡의 유명한 시 “금준미주(金樽美酒)…”는 『국조보감』과 ‘성이성 설화’ 등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춘향가> 형성에 관한 다양한 학설:
    <춘향가>의 형성에 대해서는 무가 발생설, 양 진사 창작설, 원곡 번안설, 문장체 소설 선행설, 한문 소설 부연설 등 다양한 학설이 존재합니다. 특히 판소리의 무가 발생설에 주목하여, <춘향가>가 ‘춘향굿 단계 → 춘향소리굿 단계 → 춘향소리 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3. <춘향가>의 내용 분석

<춘향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광한루에서 퇴기 월매의 딸 춘향에게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맹세하고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이몽룡의 부친이 내직으로 승진하여 서울로 떠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재회를 기약하며 눈물의 이별을 합니다.

새로 부임한 변 부사는 춘향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하지만, 춘향은 이미 이몽룡과 정혼한 사이임을 밝히며 굳게 거절합니다. 변 부사는 춘향을 회유와 협박으로 압박하지만, 춘향은 굽히지 않고 일부종사(一夫從事)의 굳은 절개를 지키며 모진 매를 맞고 결국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한편, 서울로 올라간 이몽룡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호남 지방의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옵니다. 그는 탐관오리의 실상을 파악하고 변 부사의 생일 잔치에 거지 차림으로 잠입하여 그의 악행을 낱낱이 확인합니다. 마침내 이몽룡은 어사 출두를 명하여 변 부사를 파직시키고 옥에 갇힌 춘향을 구출합니다. 춘향의 굳은 절개에 감탄한 이몽룡은 그녀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춘향가>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신분 차별의 부당함과 억압에 대한 저항,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어 오랫동안 민중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4. <춘향가>의 주요 등장인물

<춘향가>에는 매력적이고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와 감동을 더합니다.

  • 춘향: 빼어난 용모와 굳은 절개를 지닌 여주인공입니다. 신분 차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당당하게 표현하며, 수청을 거부하고 옥살이를 감내하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에는 사랑을 성취하고 신분 상승까지 이루는 전형적인 영웅적 인물입니다.
  • 이몽룡: 남원 부사의 아들로, 처음에는 다소 철없고 미숙한 면모를 보이지만 춘향과의 이별 후 학문에 정진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암행어사로 변모하는 인물입니다. 능청스럽고 익살스러운 면도 지니고 있으며, 백성을 구제하는 정의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 신관 사또 (변 부사): 탐욕스럽고 포악한 전형적인 악역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고 백성들을 수탈하는 악행을 저지르며, 결국 이몽룡에게 응징당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광기 어린 행동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 월매: 춘향의 어머니로, 기생 출신이지만 딸을 아끼는 마음이 깊고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눈치가 빠르고 행동이 민첩하며, 때로는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딸을 걱정하는 모성애를 보여줍니다.

5. <춘향가>의 다양한 창본

판소리는 구전으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창자들의 개성과 창법에 따라 여러 가지 <춘향가> 창본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창본들은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적 구성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판소리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 동편제: 웅장하고 힘찬 소리를 특징으로 하며, 송만갑제와 김세종제가 대표적입니다. 송만갑제는 박봉래, 박봉술로 이어졌으며, 김세종제는 김찬업, 정응민, 정권진, 성우향, 조상현 등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각 창본은 고유한 소리 대목을 포함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구성에도 약간의 차이를 보입니다.
  • 서편제: 애절하고 극적인 표현력이 돋보이는 소리를 특징으로 하며, 김창환제와 정정렬제가 유명합니다. 김창환제는 정창업을 거쳐 김봉학, 정광수로 전승되었으며, 정정렬제는 기존의 <춘향가>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된 신식 춘향가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정정렬제는 김여란, 박초선, 최승희 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다른 창본들과 비교했을 때 소리 대목 구성에 가장 큰 차이를 보입니다.
  • 김연수제 (동초제): 동초 김연수가 정정렬제 <춘향가>를 기반으로 여러 유파의 장점을 취합하여 새롭게 구성한 창본입니다. 옛 더늠을 복원하고 신재효의 <춘향가> 및 <옥중화>의 내용을 수용하여 가장 긴 <춘향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정숙, 이일주 등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 김소희제 (만정제): 만정 김소희가 동편제 김세종제와 서편제 정정렬제의 장점을 결합하여 새롭게 창작한 창본입니다. 처음부터 <사랑가>까지는 동편제, <이별가>부터 끝까지는 서편제 소리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신영희, 안숙선 등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 중고제: 김창룡, 이동백 등이 불렀던 창본으로, 현재는 전승이 끊어졌으나 일제강점기에 녹음된 유성기 음반을 통해 일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장자백, 박기홍 등 과거 명창들이 불렀던 <춘향가>가 필사본 형태로 일부 전해지고 있습니다.

6. <춘향가>의 특징 및 의의

<춘향가>는 한국 판소리 역사상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다음과 같은 특징과 의의를 지닙니다.

  • 다채로운 극적 구성: <춘향가>는 평화로운 사랑의 시작, 슬픈 이별, 위풍당당한 영웅의 등장, 그리고 해학적인 장면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다채로운 감동과 재미를 선사합니다.
  • 적절한 장단과 조의 조화: 사설의 내용과 감정에 따라 진양조,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 다양한 장단과 우조, 계면조, 평조 등 여러 조가 적절하게 구사되어 극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고조시키고 감정을 심화시킵니다.
  • 명창들의 뛰어난 더늠: 역대 명창들이 창조한 수많은 더늠들이 <춘향가>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각 더늠은 명창의 뛰어난 기량과 독창적인 해석을 담고 있어 판소리 감상의 깊이를 더합니다.
  • 보편적인 주제와 민족 정서: 남녀 간의 사랑, 신분 차별, 정의 구현 등 인간의 삶과 민족 정서에 부합하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 오랜 세월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 현실 반영과 사회 비판: <춘향가>는 조선 후기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신분 제도의 모순과 탐관오리의 횡포 등 시대적인 아픔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 생동감 넘치는 등장인물: 춘향, 이몽룡, 변 부사, 월매 등 개성 강하고 현실적인 인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는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 서민 의식의 반영: 조선 후기 실학 사상과 근대 정신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던 서민들의 의식이 <춘향가>에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는 억압받던 민중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열망을 보여줍니다.

<춘향가>는 단순한 옛 이야기가 아닌,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이 작품은 뛰어난 예술성과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춘향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는 한국 전통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미래 세대에 이를 온전히 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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