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소리꾼의 독특한 목소리와 기교, 즉 ‘성음(聲音)’을 통해 극적인 감동과 예술적 깊이를 더하는 한국 전통 공연 예술의 꽃입니다. 성음은 단순히 음질이나 음색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소리꾼의 발성법, 시김새(꾸밈음), 그리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극의 분위기까지 포괄하는 복합적인 개념입니다. ‘판소리는 성음 놀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음은 판소리 감상의 핵심이자 명창의 예술적 역량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판소리에서의 성음의 정의, 개관, 내용, 특징 및 의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성음의 정의 및 개관
성음(聲音)은 판소리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음질, 음색과 더불어 소리꾼의 발성법, 다양한 시김새(꾸밈음) 등 여러 음악적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는 단순히 ‘소리의 성질’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소리꾼이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조련하고 활용하여 극의 감동을 극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개념입니다. ‘철성(鐵聲)’이나 ‘수리성(수리聲)’, ‘천구성(천구聲)’과 같은 용어는 특정 음색의 특징을 나타내는 반면, ‘푸는목’, ‘감는목’, ‘찍는목’ 등은 소리를 다루는 다양한 시김새를 표현합니다.
더 나아가 성음은 판소리의 음악적 틀인 ‘조(調)’의 개념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동일한 선율이라 할지라도 어떤 성음으로 표현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조(羽調) 성음은 웅장하고 위엄 있으며 호방한 느낌을 주는 반면, 평조(平調) 성음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느낌을, 계면조(界面調) 성음은 슬프고 애조 띤 가냘픈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처럼 성음은 판소리 음악의 표현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성음의 내용 분석
성음은 크게 발성법, 발음법, 타고난 음색, 그리고 시김새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됩니다.
- 발성법(發聲法): 서양 성악과 마찬가지로 판소리에서도 발성법은 음악의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 전통 성악은 목에 인위적인 변화를 주지 않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소리를 끌어올리는 ‘통성(通聲)’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에 반해 목을 사용하여 가늘게 뽑아 올리면서도 명확하게 들리는 ‘세성(細聲)’은 ‘시성(細聲)’ 또는 ‘속목’이라고도 불립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통성이 주로 사용되지만, 음역이 넓지 않아 고음을 통성으로 내기 어렵거나 가곡의 우조,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는 의성어 등에서는 세성이 활용됩니다.
- 발음법(發音法): 정확한 발음 또한 성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아음(牙音), 설음(舌音), 순음(脣音), 치음(齒音), 후음(喉音) 등 자음의 ‘오성(五聲)’을 명확하게 구별하여 발음해야 하며, 모음 역시 정확한 발음이 요구됩니다. 자음과 모음의 발음이 부정확하면 사설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타고난 음색(音色):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색은 성음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떡목’, ‘양성’, ‘철성’, ‘수리성’ 등은 타고난 음색의 특징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떡목’은 듣기에 답답하고 탁한 소리를, ‘양성’은 맑고 깨끗하지만 깊이가 없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반면 ‘철성’은 쇠망치처럼 강하고 단단한 소리를, ‘수리성’은 쉰 목소리처럼 거칠고 껄껄한 소리를 가리킵니다. 판소리에서는 떡목과 양성을 변화와 깊이가 없는 좋지 않은 성음으로 여기며, 오히려 철성이나 수리성을 좋은 성음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수리성에 비해 맑으면서도 슬프고 애원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리를 ‘천구성’이라 하여 최고의 경지로 칭송합니다.
- 시김새: 성음이 내포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시김새, 즉 소리를 꾸미고 변화시키는 다양한 기교입니다. 이보형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박헌봉의 『창악대강』, 그리고 여러 명창과의 대담을 바탕으로 음색은 ‘성(聲)’이라는 용어로, 시김새와 소리 기교는 ‘목(목)’이라는 용어로 구분하여 사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이 붙은 용어로는 귀신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귀곡성(鬼哭聲)’과 목청을 좌우로 젖히면서 어금니 부근에서 소리를 내는 ‘아귀성(아구성)’ 등이 자주 사용됩니다. ‘목’이 붙은 용어는 더욱 다양하며, 수련이 부족하여 아직 목이 트이지 않은 ‘생목’, 깊이 없이 겉으로만 내는 소리인 ‘겉목’, 흥이 날 때 혼자서 즐겁게 내는 ‘군목’ 등이 있습니다. 또한 소리를 느긋하게 풀어내는 ‘푸는목’, 서서히 끌어들이는 ‘감는목’, 소리의 특정 지점에서 맛깔나게 찍어내는 ‘찍는목’, 소리를 맺고 끊는 ‘떼는목’, 느린 소리를 점차 빠르게 돌려 끌어들이는 ‘마는목’, 굴려서 내는 ‘방울목’, 날카롭게 깎아 내는 ‘깎는목’, 깊게 파고드는 ‘파는목’, 넓게 흩뿌리는 ‘흩는목’, 조여서 내는 ‘조으는목’, 쭉 뻗어 내는 ‘너는목’ 등 매우 다채로운 표현들이 존재합니다.
3. 성음의 특징 및 의의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조(調)’라는 용어는 음계와 성음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음계를 의미할 때는 ‘길’이라는 말을 붙여 ‘우조길’, ‘평조길’, ‘계면길’ 등으로 사용하고, 성음을 의미할 때는 ‘성음’을 붙여 ‘우조 성음’, ‘평조 성음’, ‘계면 성음’ 등으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합니다. 각 조에 따른 성음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우조 성음: 위엄 있고, 호방하며, 웅장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음색입니다. 주로 영웅적인 인물의 호탕한 성격이나 극의 웅장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 평조 성음: 즐겁고, 평화로우며, 유유자적하고, 한가한 느낌을 주는 음색입니다. 평화로운 장면이나 서정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
- 계면조 성음: 슬프고, 애절하며, 서운하고, 가냘픈 느낌을 주는 음색입니다. 주로 슬픈 이별이나 애환,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판소리 사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장단, 조, 그리고 성음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이면(裏面)을 그린다’라고 하는데, 이는 타고난 음색과 성량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얻어진 완숙한 소리를 ‘성음을 얻었다’ 또는 ‘득음(得音)’이라고 부릅니다.
신재효는 그의 창작 단가 <광대가>에서 광대가 갖춰야 할 자질로 첫째 인물치레, 둘째 사설치레, 셋째 득음, 넷째 너름새(연기)를 제시하며 득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득음을 “오음을 분별하고 육률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라고 표현하며 득음의 어려움을 역설했습니다.
박헌봉은 『창악대강』에서 득음의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며 그 지난한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과거 명창들이 폭포나 암굴에서 며칠 밤낮으로 소리를 지르고 넓혀가며 목이 완전히 쉬어버리는 고통을 감내하고, 피를 토하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발성을 연마하여 마침내 벽공을 뚫을 듯하고 넓은 지역을 울려 덮을 듯한 웅장하고 명쾌한 성음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신(神)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합니다.
판소리에서는 ‘판소리는 성음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청중들이 소리꾼의 성음만 듣고도 사설에 담긴 온갖 희로애락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판소리의 음악적 요소인 성음, 조(길), 장단 모두 중요하지만, 최고의 경지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사설의 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특히 매력적인 성음은 판소리 감상의 깊이를 더하고 감동을 증폭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명창들은 득음을 위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된 수련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판소리에서의 성음은 단순한 목소리가 아닌, 소리꾼의 예술혼과 기량이 집약된 결정체입니다. 타고난 음색을 갈고 닦아 다양한 발성법과 시김새를 구사하며, 극의 내용과 감정에 따라 다채로운 성음을 표현하는 것은 판소리 명창의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성음은 판소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극의 감동을 극대화하며, 청중과 소리꾼을 하나로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합니다. ‘판소리는 성음 놀음’이라는 말처럼, 성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판소리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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