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서사, 음악, 연기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입니다. 이 중에서도 ‘득음(得音)’은 판소리 창자(唱者)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용어로, 단순히 뛰어난 가창력을 넘어 음악적 역량과 예술혼이 완벽하게 융합된 상태를 일컫습니다. ‘소리를 얻었다’ 혹은 ‘목소리를 얻었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 판소리 창자가 오랜 수련과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청중을 압도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상징합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판소리 득음의 정의, 개관, 내용, 특징 및 의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득음의 정의 및 개관
득음(得音)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소리[音]를 얻었다[得]’ 또는 ‘목[音]을 얻었다[得]’는 뜻입니다. 일찍이 신재효(申在孝)는 <광대가(廣大歌)>에서 판소리 창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요건 중 하나로 득음을 꼽으며, 그 달성의 어려움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판소리는 창(唱), 아니리(말), 발림(몸짓)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지만, 이 중에서도 창자의 예술적 역량을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인 기준은 단연 창입니다. 득음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판소리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 확립된 시기부터 창자의 득음 여부는 중요한 논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는 득음이 단순히 기술적인 숙련을 넘어, 판소리 예술의 본질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2. 득음의 내용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득음에 대해 “득음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률(六律)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오음을 분별하고 육률을 변화’시키는 것은 판소리의 기본적인 음악 어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곡조를 창작해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또한 ‘오장에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내는 것은 단순히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몸 전체의 울림을 통해 깊이 있고 풍부한 소리를 자유롭게 표현해내는 경지를 뜻합니다. 이는 뛰어난 기교와 섬세한 발성을 통해 음악적 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자신만의 소리로 재창조하는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득음을 정의하거나 설명하는 방식은 연구자마다 다소 차이를 보입니다. 강한영은 득음을 ‘사설을 소리로써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성음을 갖춘 상태’로 정의하며, 소리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넘어 극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을 강조합니다. 백대웅은 ‘오랜 독공 후에 모든 성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로 보아, 끊임없는 자기 연마를 통해 소리의 한계를 초월하는 숙련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이보형은 ‘판소리에 맞는 발성과 시김새를 통해 성음을 얻고 선대의 더늠을 구사할 수 있는 경지’로 규정하며, 전통적인 기법의 완벽한 습득과 더불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파악합니다. 최동현은 득음을 ‘소리꾼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얻는 것’으로 폭넓게 해석하며, 단순히 소리뿐만 아니라 아니리, 발림 등 판소리 공연 전반에 걸친 역량의 완성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김정태는 기존 연구와 판소리 창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득음을 ‘창자가 사설의 이면(裏面)을 표현하는 데 있어 효율적인 호흡법과 합리적인 발성법을 구사할 수 있고, 스승으로부터 배운 소리를 자기화한 경지’라고 정의하며, 기술적인 숙련뿐만 아니라 내면의 깊이까지 표현해내는 예술적 통찰력을 강조합니다.
결국 득음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소리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을 넘어,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고 재창조하여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장단을 자유롭게 운용하고 정확한 음정을 구사하는 것은 물론, 소리의 성음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극의 흐름에 따라 조(調)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적절한 시김새와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더늠을 능숙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득음했다’고 평가받게 됩니다.
3. 득음의 특징 및 의의
판소리 창자가 득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도의 독공(獨功), 즉 홀로 하는 수련이 필수적입니다. 수많은 명창들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고통을 감내하며 득음을 이루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의 명창 송흥록(宋興祿)은 폭포 아래에서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 결과 목이 완전히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지만, 석 달 동안 이러한 고행을 지속한 끝에 검붉은 선지피를 서너 동이나 토해냈고, 이후 그의 목은 완전히 트여 그가 지르는 우렁찬 소리가 폭포의 물줄기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가는 듯한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해집니다.
또 다른 명창 박동진(朴東鎭)은 백일 동안 득음을 위한 수련에 매진하기로 결심하고, 홀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움막을 짓고 독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극한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몰아붙이며 연습에 매진한 결과, 몸이 붓고 잇몸이 솟아오르며 목이 잠겨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고, 결국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그를 찾아온 아버지에게 인분(人糞)을 거른 물을 구해다 달라고 부탁하여 마신 후, 차츰 건강을 회복하여 무사히 백일 공부를 마치고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화들은 득음이 단순히 재능이나 노력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판소리 창자들이 목숨을 걸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목표이자 예술적 성취임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득음은 소리꾼의 혼과 열정, 그리고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총체적으로 결합된 결과이며, 이를 통해 비로소 창자는 청중에게 진정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선사할 수 있게 됩니다.
판소리에서의 득음은 단순한 가창 기술의 완성을 넘어, 창자가 자신의 모든 음악적 역량과 예술혼을 최고조로 발휘하여 청중을 압도하는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이는 끊임없는 자기 연마와 고통을 감내하는 혹독한 수련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득음에 이른 창자의 소리는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를 넘어, 극의 내용과 인물의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청중의 마음을 깊이 울리는 힘을 지닙니다. 득음은 판소리 예술의 핵심 가치이자, 모든 소리꾼들이 꿈꾸는 영원한 목표이며, 이를 통해 한국 전통 예술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판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소리 열두마당 심층 분석: 한국 구비 서사극의 방대한 세계와 예술적 진화 (0) | 2025.04.19 |
---|---|
판소리 ‘이면(裏面)’ 심층 분석: 사설과 소리의 진실성, 그리고 예술적 창조성의 역동적 관계 (0) | 2025.04.18 |
신재효의 <광대가(廣大歌)> 심층 분석: 판소리 예술의 본질과 광대의 이상을 노래하다 (0) | 2025.04.16 |
판소리 단가 <초한가> 심층 분석: 영웅의 비극과 역사의 교훈을 담은 노래 (0) | 2025.04.15 |
판소리 <수궁가>의 해학적인 풍경, 토끼화상 심층 분석: 상상력과 언어유희의 향연 (0) | 2025.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