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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단순한 구비 서사극을 넘어, 문학적 텍스트인 사설(辭說)과 음악적 표현, 그리고 극적인 연기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종합 예술입니다. 이 중 ‘이면(裏面)’이라는 용어는 판소리 향유자 및 연구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으나, 그 의미의 폭과 깊이가 매우 다양하여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 판소리 고유의 맥락 속에서 사용되는 ‘이면’은 사설이나 음악의 진실성(리얼리티)을 의미하기도 하고, 신재효와 같은 이론가는 이를 행위의 상황과 사실에 부합하는 표출(表出)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판소리에서 논의되는 ‘이면’의 다양한 의미와 특징, 그리고 그 의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이면의 정의 및 개관

이면(裏面)은 사전적으로는 겉으로 보이는 면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보이지 않는 면(속) 또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뒷면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판소리에서는 이 용어가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사설(辭說) 혹은 음악의 리얼리티(reality), 즉 사실성이나 진실성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한, 판소리 이론가이자 후원가였던 신재효(申在孝)는 자신의 저서 『판소리 사설집』에서 ‘이면’을 행위의 상황과 사실에 꼭 들어맞는 표출(表出)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이면’이라는 용어는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층위에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단일하게 규정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판소리 공연이라는 복합적인 예술 현상 속에서 ‘이면’은 문학적 측면, 음악적 측면, 극적 측면 등 다양한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며 그 의미를 형성해 왔습니다.

 

2. 판소리 공연의 구조와 이면의 등장

판소리는 문자로 기록된 사설을 창자(唱者)가 노래로 부르는 공연 예술입니다. 실제 공연에서는 사설(문학적인 측면), 음악(성음, 장단 등), 그리고 너름새(몸짓, 표정 등 극적인 측면)가 동시에 결합되어 표출됩니다. 사설은 공연 이전에 텍스트 형태로 존재하며 공연의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합니다. 판소리 공연에는 소리꾼뿐만 아니라 고수(鼓手)의 존재 또한 필수적입니다. 판소리의 극적인 측면은 창자와 고수의 행동을 통해 나타나며, 고수의 북장단과 추임새, 그리고 창자가 구사하는 사설은 ‘소리’라는 물리적인 현상을 통해 청중에게 전달됩니다. 이처럼 다층적인 구조를 지닌 판소리 공연의 여러 국면에서 ‘이면’이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다음에서는 자료에 제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면’의 다양한 쓰임새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3. 이면의 다양한 쓰임새 분석

3.1. 사설의 진실성 판단 기준으로서의 이면: “이면이 틀리다, 이면이 당치 않다”

이러한 표현은 주로 판소리 사설의 내용이 현실의 상황이나 보편적인 이치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신재효본 <춘향가(春香歌)>에서 옥에 갇혀 고생하는 춘향에게 점쟁이가 복채를 요구하는 장면이나, 향단이가 갑자기 많은 음식을 차려내는 장면에서 “이면이 틀렸다” 혹은 “이면이 당치 않다”는 판단이 내려집니다. 옥중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생하는 춘향에게 복채를 달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부적절하며, 갑작스럽게 많은 음식을 차려내는 것 역시 사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이면’은 ‘행위와 상황과 사실에 꼭 들어맞는 표출(表出)’이라는 신재효의 정의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설의 내용이 이러한 ‘이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판소리 향유자들은 사설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신재효는 <춘향가>에서 향단이 음식을 차리는 장면의 사설을 간결하게 바꾸었습니다. 반면 복채를 요구하는 장면에서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윤리적인 문제점을 해소하려 시도합니다. 맹인 점쟁이는 복채를 요구하는 행위가 춘향을 돕기 위한 신성한 행위임을 강조하며, 새로운 맥락을 제시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방지하고자 합니다. 이는 판소리 사설이 단순히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넘어, 일정한 수준의 현실성과 개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3.2. 사설과 소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서의 이면: “소리의 이면”

‘소리의 이면’이라는 표현은 판소리 사설이라는 텍스트와 이를 노래하는 소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소리의 이면을 깊이 알지 못하고” 혹은 “소리를 수만독하면 소리의 이면을 깊이 알게 되고”와 같은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소리의 이면’은 단순히 물리적인 음향 현상을 넘어, 그 소리가 내포하고 있는 더 깊은 의미나 가치를 의미합니다. 판소리 공연에서 ‘소리’는 창자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몸짓, 표정 등의 너름새와 고수의 북장단, 추임새 등 다양한 요소들을 포괄합니다. 사설은 언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소리라는 감각적인 대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의미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훌륭한 사설이 반드시 훌륭한 소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훌륭한 소리가 항상 사설의 의미를 완벽하게 전달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같은 사설이라도 소리로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의 이면’을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복잡한 관계성을 파악하고, 소리를 통해 사설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3. 전통적인 공연 규범으로서의 이면: “이면이 맞다, 혹은 이면이 틀리다”

이러한 표현은 주로 숙련된 소리꾼들 사이에서 사용되며, 오랜 판소리 공연 전통 속에서 형성된 일종의 규범이나 관습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성창순 명창이 <심청가>의 특정 대목에 대해 “이면이 맞는다”고 평가한 것은, 그 대목의 소리 표현 방식이 보성 소리 유파의 전통적인 특징과 잘 부합하며, 오랜 공연 관행 속에서 인정받아온 완성도 높은 형태를 띠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는 구전으로 전승되는 예술이기 때문에, 소리꾼은 스승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정형화된 소리 형태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때 ‘이면이 잘 맞는다’는 것은, 배우고 익힌 소리의 형태가 그 내용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청중이 이해하는 의미 사이의 괴리가 없이 잘 조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숙련된 소리꾼에게 ‘이면에 맞는 소리’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연마해 온 기량과 예술적 감각이 전통적인 규범 안에서 제대로 발휘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3.4. 예술적 창조성의 발현으로서의 이면: “이면을 그린다”

‘이면을 그린다’는 표현은 단순히 전통적인 소리 형태를 답습하는 것을 넘어, 창자가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발휘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독창적인 표현을 창조해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오랜 역사를 지닌 전승 예술이라 할지라도, 창자는 공연 상황과 자신의 해석에 따라 전통적인 틀 안에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창조적인 활동을 ‘이면 그리기’라고 하며, 이를 통해 창자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예술가로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방울 명창은 “이면이 소리 망치는 것”이라고 경계하며, 지나치게 창조적인 시도가 오히려 전통적인 소리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반면 김연수 명창은 임방울에 대해 “이면도 모르고 소리한다”고 비판하며, 전통적인 소리 형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시도는 오히려 그릇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이는 판소리에서 전통과 창조성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하고 섬세한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이면’은 때로는 전통적인 규범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3.5. 사설과 음악의 리얼리티로서의 이면

일부에서는 ‘이면’을 사설이나 음악의 리얼리티(reality)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설의 리얼리티는 그 내용이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가에 따라 판단될 수 있지만, 공연되는 소리의 리얼리티는 소리가 사설의 내용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하는가에 따라 평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물리적인 음향 현상이고, 사설은 언어적인 텍스트이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사실적인 재현’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주관적인 문제입니다. 높은 음이 산을, 낮은 음이 바다를, 긴 음이 먼 거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모든 사설의 내용을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판소리 예술은 단순히 사실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감동과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사실성에만 집착할 경우 예술적 가치를 잃고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판소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면 그리기’를 통해 변화하고 발전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단순한 사실성만으로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이면의 특징 및 의의

결론적으로 ‘이면’은 판소리에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판소리 공연과 감상 과정에 관여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역동적인 개념입니다. 사설의 내용이 현실이나 이치에 맞지 않다고 판단될 때, ‘이면이 틀렸다’고 지적하며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거나 사설을 개작하고 음악을 변화시키는 등의 노력을 통해 ‘이면을 맞추’려는 시도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과정은 판소리 향유 집단 내에서 합의를 거쳐 이루어지며, 인정받으면 그대로 전승되고 그렇지 못하면 폐기됩니다. 그런데 판소리 향유 집단은 다양한 계층과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면’에 대한 인식 차이는 다양한 유파(流派)와 바디(소리제)의 차이를 낳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판소리에서 ‘이면’은 사설과 소리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 전통적인 공연 규범, 예술적 창조성의 발현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이는 판소리가 단순한 구전 예술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향유자들과 소통하는 살아있는 예술임을 보여줍니다. ‘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판소리라는 독특한 예술 형식을 더욱 풍부하게 감상하고 그 예술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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