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춘향가(春香歌)>는 조선 후기 사회의 신분 갈등과 사랑,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 수많은 명창들에 의해 다채롭게 연행되며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 중 ‘십장가(十杖歌)’는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 요구를 거부하고 태형(笞刑)을 당하는 극적인 장면에서 불리는 노래로,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활용한 독특한 사설과 비장미 넘치는 곡조로 인해 <춘향가>의 핵심적인 눈대목(가장 감동적인 대목)으로 손꼽힙니다. 춘향의 굳건한 정절 의지와 부당한 권력에 대한 강렬한 항거 정신이 응축되어 있는 ‘십장가’는 단순한 극적 클라이맥스를 넘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다층적으로 해석되어 온 중요한 예술적 성취입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춘향가> 중 ‘십장가’의 정의, 개관, 내용, 특징 및 의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십장가’의 정의 및 개관
‘십장가(十杖歌)’는 판소리 <춘향가>의 주요 대목 중 하나로,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 신임 사또 변학도에게 태형을 당하면서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각 구절의 첫 음절에 배치하는 두운(頭韻) 형식을 사용하여 자신의 굳건한 정절을 맹세하고, 수청 강요의 부당성을 폭로하며, 새로 부임한 신관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십장가’는 <춘향가> 전체 서사에서 춘향의 저항 의지가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드러나는 핵심적인 부분으로 평가받습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춘향가> 이본 109개 중 95개에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널리 향유되었으며, 판소리 공연에서도 중요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십장가’의 가장 큰 특징은 태형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각각의 숫자의 음을 빌려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형식입니다. 예를 들어 “일(一) 채 낱 딱 붙이니, 일정지심(一定之心) 있사오니 이러하면 변하리오.”와 같이 숫자의 음과 유사한 한자어를 활용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본에 따라 태형의 횟수가 10에서 멈추는 경우도 있지만, 15, 20, 심지어 25까지 확대되는 경우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십장가’가 단순히 열 번의 매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춘향의 고난과 저항의 강도를 점층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활용되었음을 시사합니다.
2. ‘십장가’의 내용 분석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따르면, 현재 전해지는 ‘십장가’의 틀을 만든 명창은 조기홍(趙奇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더늠(명창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교와 해석을 담아 창작한 소리 대목)은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십장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초기 <춘향가>의 형태를 보여주는 유진한(柳振漢)의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에는 ‘십장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십장가’가 <춘향가> 서사 전체의 변이 과정에서 후대에 첨가된 대목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춘향의 정절이라는 주제가 <춘향가> 서사의 후대로 갈수록 더욱 강조되는 경향을 고려할 때, ‘십장가’가 후대에 삽입되었다는 추론은 설득력을 갖습니다. 현재 전승되는 <춘향가> 창본(唱本)에서 ‘십장가’가 빠져 있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춘향의 정절과 저항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핵심적인 대목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십장가’가 모든 <춘향가> 이본에서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남원고사(南原古詞)』와 같은 세책본(貰冊本, 책을 빌려주는 것을 업으로 하던 곳에서 만들어진 책) 계열의 ‘십장가’는 창본에 비해 사설이 현저하게 확장되어 있습니다. 또한 ‘십장가’의 위치도 춘향이 매를 맞기 직전 신관에게 격렬하게 항거하는 대목에 설정되어 있어, 대부분의 이본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십장가’의 위치 변화는 매를 맞으면서 노래를 한다는 상황이 현실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판단, 즉 이면(異面)에 맞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십장가’가 처음 형성될 당시에는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수(數) 사설>의 형태로 저항하는 장면에서 불렸으나,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후대에 매를 맞는 장면으로 이동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 계열의 특징은 태형이 10대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마무리된다는 점입니다.
완판본(完板本, 완전히 갖추어진 목판본) 계열의 ‘십장가’는 현재의 창본과 마찬가지로 태형과 함께 진행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완판 84장본이 가장 확장된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 계열의 ‘십장가’에는 단순히 춘향 개인의 정절을 주장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신관 변학도의 무능함과 탐욕을 지적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십장가’를 통해 춘향 개인의 항거가 춘향으로 대표되는 민중 전체의 항거로 그 의미가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옥중화(獄中花)』 계열의 ‘십장가’는 춘향의 태형이 30장까지 확대된다는 점에서 완판본 계열과 유사하지만, 5장 이후부터는 『대전통편(大典通編)』의 법률 조항을 인용하는 상고(詳考) 대목이 삽입되어 있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는 춘향의 저항이 단순한 감정적인 호소나 사회 비판을 넘어, ‘법적’인 문제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본 계열의 ‘십장가’ 역시 전승 계열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김세종제로 분류되는 장자백 창본은 대체로 완판 33장본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세종제 계통의 조상현 창본과 성우향 창본의 경우, 사설은 『옥중화』 계열과 동일하지만 8번째 장면에 등장하는 사설은 장자백 창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춘향은 변학도를 탐관오리로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반면 정정렬제를 계승하고 있는 김여란, 김연수, 김소희 창본은 모두 동일한 ‘십장가’ 구성을 보여주는데, 다른 창자들의 ‘십장가’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지닙니다. 이들 창본에서는 춘향이 집장사령에게 매를 맞으면서 마치 실제 신관 변학도와 직접 대화하는 듯한 극적인 구성이 돋보입니다. 이는 ‘십장가’가 <춘향가>의 주요 눈대목으로서 무대에서 자주 공연되는 점을 염두에 둔 연극적인 구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한편, 신재효(申在孝)가 편찬한 『남창춘향가』의 ‘십장가’는 비장미가 최고조에 달하다가 마지막 열 번째 매질에서 여성의 성기를 속되게 표현하는 비속어를 사용하여 극단적인 파국(破局)을 보여주는 독특한 특징을 지닙니다. 이는 신재효가 당대 사회의 성적 억압에 대한 비판 의식을 ‘십장가’에 담아내고자 했던 의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십장가’는 <춘향가> 전체에서 가장 비장미가 고조되는 부분입니다. 춘향의 고난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이기 때문에, 주로 진양조장단이나 세마치장단과 같이 느리고 애절한 곡조를 사용하여 극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합니다. 공연 시 창자는 자리에 앉아 몸짓이나 표정 연기를 절제하면서도 내면의 고통과 굳건한 의지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형태의 발림(몸짓)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십장가’의 특징 및 의의
<춘향가>에서 ‘십장가’는 춘향이 모진 고난을 겪고, 그 고난에 굴하지 않고 저항함으로써 열녀(烈女)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따라서 ‘십장가’를 통해 드러나는 춘향의 항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춘향 항거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조망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춘향 개인의 순수한 사랑과 굳건한 정절을 강조하는 측면입니다. 이는 당시 사회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 윤리에 빗대어 자신의 애정과 정절의 가치를 옹호하고, 이를 통해 부당한 수청 강요에 맞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남원고사』 계열의 ‘십장가’입니다. 이 계열에서 신관은 탐관오리로서의 악행보다는 아름다운 젊은 남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존재로 그려질 뿐이며, 신분 제도의 모순과 같은 사회적인 의미는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둘째는 ‘십장가’를 통한 춘향의 항거가 사회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경우입니다. 완판 84장본의 ‘십장가’가 대표적인데, 이 계열에서 춘향은 신관 변학도를 백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이자, 가혹한 학정을 일삼는 인물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즉,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문제와 춘향의 정절이라는 여성의 덕목이 신관의 무능함과 학정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는 ‘십장가’가 단순한 개인의 저항을 넘어, 부패한 관료 사회에 대한 민중의 비판 의식을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 외에도 『옥중화』 계열의 ‘십장가’는 또 다른 특징적인 양상을 보여줍니다. 이 계열에서는 『대전통편』의 법률 조항을 인용하는 상고 대목이 등장하는데, 이는 현재 전승되는 창본에서도 많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옥중화』 계열본이 보여주는 법리 공방은 당시 <춘향가> 향유층이 춘향을 단순한 이야 속의 인물이 아닌, 자신들과 같은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인식하고, 그 개인의 권리가 법을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십장가’가 법리를 통한 항거를 강조하게 되면, 본래 가지고 있던 사회 비판적인 의미는 다소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오히려 법률 조항을 인용한 ‘십장가’ 구성은 춘향의 항거를 개인적인 차원, 즉 자신의 정절에 관한 문제로 한정시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춘향가>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향유층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해 온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 <춘향가> 중 ‘십장가’는 춘향의 고난과 저항 정신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적인 대목입니다.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어, 숫자를 활용한 독특한 형식과 비장미 넘치는 곡조는 듣는 이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합니다. 또한 ‘십장가’는 시대의 흐름과 향유층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개인적인 정절 강조에서 사회 비판, 그리고 개인의 권리 옹호로까지 확장되어 온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십장가’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는 <춘향가>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풍부하게 인식하고, 나아가 한국 전통 문화의 깊이를 헤아리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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