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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 조선 후기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하고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그의 만년에 창작된 가사(歌辭) <광대가(廣大歌)>는 판소리 광대라는 존재를 통해 판소리 예술의 본질과 그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40세 이후부터 판소리 광대를 후원하며 깊은 애정과 통찰력을 키워온 신재효의 경험과 예술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광대가>는 단순히 광대의 역할을 넘어 당대 사회의 문화적 지형도와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신재효의 <광대가>의 정의, 개관, 내용, 특징 및 의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광대가의 정의 및 개관

<광대가(廣大歌)>는 신재효(申在孝, 1812~1884)가 판소리 광대를 소재로 하여 만년(晩年)에 지은 가사(歌辭)입니다. 신재효는 40세 이후부터 판소리 광대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수십 년간 판소리를 가까이에서 접하며 쌓은 깊이 있는 식견과 판소리 광대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이 <광대가> 곳곳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3·4·3·4조의 율격으로 이루어진 약 75행의 비교적 짧은 작품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함축적이고 다층적입니다. <광대가>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에서는 역대 고금의 뛰어난 문장가들의 작품조차 판소리에 비하면 모두 헛된 것에 불과하다고 단언하며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를 극적으로 강조합니다. 둘째 부분에서는 당시 판소리 광대가 갖춰야 할 네 가지 필수 요건, 즉 인물치레(容貌), 사설치레(辭說), 득음(得音), 너름새(身짓)를 상세하게 소개합니다. 셋째 부분에서는 <허두가(虛頭歌)>의 하나인 <영산(靈山)>을 시작으로 실제 판소리 공연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냅니다. 마지막 넷째 부분에서는 당대의 뛰어난 명창들을 중국 당송(唐宋) 시대의 유명한 문인들에 비유하여 그 예술적 경지를 높이 평가합니다.

 

2. 광대가의 내용 분석

2.1. 판소리의 압도적인 예술적 가치

<광대가>의 첫 번째 부분은 판소리의 예술적 위상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중국의 저명한 문인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 제갈량(諸葛亮)의 <양보음(梁甫吟)>,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이백(李白)의 <원이별(遠別離)>,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 원진(元稹)의 <연창궁사(連昌宮詞)>, 이교(李嶠)의 <분음행(汾陰行)> 등 당대까지도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칭송받던 이들의 작품들이 판소리에 비하면 모두 허사에 불과하다는 신재효의 주장은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난 매우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특히 판소리가 천한 광대들에 의해 연행되는 예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평가는 판소리 예술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한 사람만이 감히 할 수 있는 소신 있는 발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재효의 주장은 당대 지식인 사회에서도 공감을 얻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문인 신위(申緯)는 판소리 명창들의 공연을 보고 “고송염모(고수관,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는 우리나라의 이름난 광대 미칠 듯한 기쁨이 나를 시수(詩囚)에서 벗어나게 해 주네(관극절구(觀劇絶句)).”라고 극찬했으며, 조선 말기의 문장가 이건창(李健昌) 역시 <심청가>를 감상한 후 “웃고 우는 것이 거짓이라 말하지 마소 인생 백년에 이 경지를 몇 번이나 맛보리(<부(賦)심청가 2수>).”라며 판소리가 주는 깊은 감동을 예찬했습니다. 비록 지방 관아의 아전 출신으로 중인 신분이었던 신재효였지만, 그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더욱 명확하고 단호하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2.2. 판소리 광대가 갖춰야 할 네 가지 요건

<광대가>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신재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판소리 광대가 갖춰야 할 네 가지 필수 요건, 즉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를 제시합니다. 당시 판소리는 오늘날과 같이 음악 공연 위주의 형태뿐만 아니라, 광대놀음으로서의 연희적 성격도 강했기 때문에 광대의 외모, 흥미로운 사설, 뛰어난 가창력, 능숙한 연기력이 모두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습니다. 특히 야외 공연이 주를 이루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광대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외모를 갖추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신재효는 인물치레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공연자로서 적합한 기본적인 외모를 갖춰야 함을 강조합니다. 물론 조선 말기에는 박유전과 같이 한쪽 눈이 없는 광대도 서편제라는 새로운 판소리 유파를 창시하고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기도 했지만, 다수의 관객을 직접 대면하는 판소리 공연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외모가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사설치레에 대해서는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칠보단장 미부인이 병풍이 나서는 듯, 삼오야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해야 한다”고 묘사하며, 아름답고 세련된 언어로 비유와 상징을 적절히 사용하여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고 새로운 감동을 선사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당시 새롭고 창의적인 사설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득음은 ‘오장에서 내는 소리로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률(六律)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며, 단순히 목으로만 내는 소리가 아닌, 몸 전체에서 울려 나오는 깊고 풍부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너름새는 ‘귀성 끼고, 맵시 있게 경각에 천태만상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로 관객들을 울고 웃게 해야 한다’고 하여, 능숙한 연기력과 다채로운 몸짓을 통해 신과 귀신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연기를 펼쳐 관객들을 울리고 웃길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2.3. 판소리 실연 현장의 묘사

<광대가>의 세 번째 부분은 실제 판소리 공연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여기서 신재효는 판소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높은 예술적 안목을 드러냅니다. 그는 <허두가>로서 <영산>을 부르는 것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인 판소리 공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며, 장단은 “중모리 중허리며 허성이며 진양조를 달아두고 놓아두고 걸리다가 들치다가” 정도로 변화를 주어 연행하고, 아니리는 “아리따운 제비말과 공교로운 앵무소리”처럼 재치 있고 흥미롭게 구사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판소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성음(聲音)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눈에 띕니다. 끌어올려 내는 목, 차차로 돌리는 목, 돋우어 올리는 목, 톡톡 굴러 내리는 목, 청청하게 도는 목, 청원하게 뜨는 목, 애원성 흐르는 목, 불시에 튀는 목, 음아질타 호령소리, 찬바람 부는 소리 등 다양한 성음의 특징을 열거하며, 판소리 소리가 얼마나 다채롭고 역동적인 예술인지를 보여줍니다.

 

신재효는 앞서 광대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득음보다 사설치레를 먼저 언급할 정도로 당시에는 새로운 사설을 창작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판소리 역시 다른 성악 예술과 마찬가지로 장단과 선율뿐만 아니라, 판소리 특유의 다양하고 강력한 성음을 구사하는 것이 최고의 예술적 경지에 이르는 핵심 요소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춘향가>, <심청가> 등 구체적인 판소리 사설의 내용보다는, 그러한 사설들을 연행할 때 구사되는 다채로운 성음들을 실제 판소리 공연의 중요한 특징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2.4. 당대 명창과 당송 문인의 비교

<광대가>의 마지막 네 번째 부분에서는 신재효가 당대의 뛰어난 명창들을 중국 당송 시대의 유명한 문인들에 비유하여 그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송선달 흥록이는 타성주옥(唾成珠玉) 방약무인(傍若無人) 화란춘성(花爛春城) 만화방창(萬化方暢)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 모동지 흥갑이는 관산만리(關山萬里) 초목추성(草木秋聲) 청천만리(靑天萬里) 학(鶴) 울음 시중성인(詩中聖人) 두자미(杜子美)”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비교는 주로 그들이 구사하는 음악적 특징이나 예술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송흥록의 소리는 마치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구슬이 되는 듯 화려하고 거침이 없으며, 봄날 꽃이 만발한 듯 온갖 아름다운 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이백의 시풍에 비견됩니다. 반면 모흥갑의 소리는 험준한 산맥과 가을 풀잎의 쓸쓸함, 푸른 하늘을 가르는 학의 울음소리처럼 깊고 숭고하여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두보의 시에 비유됩니다. 이 외에도 신재효는 권삼득을 한유(韓愈), 신만엽을 두목지(杜牧之), 황해천을 맹교(孟嶠), 고수관을 백낙천(白樂天), 김제철을 구양수(歐陽脩), 주덕기를 소식(蘇軾)에 각각 비유하며 그들의 뛰어난 예술적 경지를 칭송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재효는 당대의 명창들이 각자의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자신은 이러한 명창들의 장점을 모두 갖춘 진정한 의미의 구비 명창 광대가 나타나기를 여전히 기다린다고 토로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판소리의 깊은 속뜻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판소리 광대가 되어 이를 직접 실연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3. 광대가의 특징 및 의의

<광대가>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특징과 의의를 지닙니다.

  • 판소리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 신재효는 <광대가>를 통해 판소리 예술의 본질과 그 핵심적인 요소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그는 단순히 판소리 공연의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 담긴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 광대 예술의 위상 제고: 당시 천대받던 광대들의 예술을 당대 최고의 문학 작품과 비교하고, 나아가 중국의 유명 문인에 비견함으로써 광대 예술의 위상을 격상시키고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이는 신재효가 판소리 예술과 그 연행자들에 대해 얼마나 깊은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 당대 판소리 공연의 생생한 기록: <광대가>는 당시 판소리 공연의 실제 모습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닙니다. <허두가>의 종류, 장단의 변화, 아니리의 특징, 다양한 성음의 구체적인 묘사 등을 통해 우리는 당시 판소리 공연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상세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 예술가의 이상적인 모습 제시: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라는 네 가지 요건을 제시하며,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판소리 광대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할 덕목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판소리 단가로서의 생명력: <광대가>는 본래 긴 가사 작품이지만, 1998년 국립창극단에서 창극으로 공연될 당시 김일구 명창에 의해 자진모리장단으로 작창되어 불린 이후 판소리 단가로도 간혹 연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광대가>가 지닌 문학적, 예술적 가치가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과거 이동백 명창도 <광대가>의 일부를 중모리장단으로 불렀다는 기록은 이 작품이 단가로서의 가능성을 꾸준히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신재효의 <광대가>는 단순한 판소리 광대에 대한 찬양을 넘어, 판소리 예술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이상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제시하는 중요한 문학 작품입니다. 당대 사회의 문화적 편견에 맞서 판소리 예술의 위상을 드높이고, 그 연행자들의 노고와 예술혼을 기린 신재효의 <광대가>는 오늘날 우리가 판소리라는 위대한 전통 예술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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