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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흥보가(興甫歌)>는 조선 후기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형제간의 우애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중 ‘돈타령’은 가난한 흥보가 우여곡절 끝에 돈을 얻게 된 후 기쁨에 겨워 돈의 생김새와 속성을 노래하는 대목으로, 단순한 희극성을 넘어 당시 사회의 경제적 현실과 빈민층의 돈에 대한 절실한 인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경쾌한 중중모리장단에 평조와 계면조를 섞어 흥겹게 불리는 ‘돈타령’은 <흥보가>의 핵심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동시에, 조선 후기 사회의 빈부 격차 심화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돈이 갖는 의미를 심층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흥보가> 중 ‘돈타령’의 정의, 개관, 내용, 특징 및 의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돈타령’의 정의 및 개관

‘돈타령’은 판소리 <흥보가>의 여러 대목 중 하나로, 흥보가 돈을 갖게 된 후 기뻐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주된 내용은 돈의 외형적인 특징과 돈이 가진 사회적 속성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흥보가 환자섬(환곡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섬)을 얻기 위해 고을 아전에게 갔다가, 매품(군역 대신 돈을 내고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는 일)을 팔기로 약속하고 그 대가로 말 값 명목으로 닷 냥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자랑하며 부르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일부 창자들은 흥보가 제비 다리를 고쳐준 대가로 받은 박에서 돈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 돈꿰미를 손에 들고 기쁨을 토로하며 ‘돈타령’을 부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돈타령’이 <흥보가>뿐만 아니라 <춘향가(春香歌)>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변사또의 명을 받은 군노 사령이 춘향을 잡아들이러 왔을 때, 춘향이 그에게 돈을 건네는(혹은 거절당하는) 대목에서 ‘돈타령’이 불립니다. 김창룡 명창이 취입한 유성기 음반에 따르면, <춘향가>의 ‘돈타령’은 염계달(廉季達) 명창의 더늠(명창이 자기 특기로 만들어낸 독특한 소리 대목)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돈타령’이라는 특정 주제의 노래가 여러 판소리 작품에서 활용될 만큼 그 내용이 보편적인 공감을 얻었음을 시사합니다.

2. ‘돈타령’의 내용 분석

‘돈타령’의 사설은 크게 돈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부분과 돈의 속성을 나열하는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돈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구절은 “맹상군(孟嘗君)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입니다. 이는 <돈타령>에서 반드시 포함되는 핵심적인 구절인데, 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맹상군의 이름이 돈을 가리키는 전문(錢文)과 발음이 같다는 점에 착안한 해학적인 표현입니다. 맹상군은 부자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돈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돈타령’에서 노래하는 돈의 속성은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위력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돈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원하는 것이며, 부귀와 공명을 얻는 매개체가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생살지권(生殺之權)까지 가지고 있다고 노래합니다. 또한 박봉술 창본의 “베개 너머는 침 뱉는 돈”, 정광수 창본의 “이 돈을 옳게 보면 삼강오륜이 다 보이고 만일 돈을 못 보면 삼강오륜이 끊어지니”와 같은 구절에서는 돈 앞에서는 그 어떠한 인간적인 가치나 윤리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돈’이라는 한 음절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그 강렬한 인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효과를 줍니다.

‘돈타령’ 사설에 담긴 이러한 내용들이 서사적 상황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실감나게 느껴지는 경우는 <흥보가> 중 ‘매품팔이’ 대목에서 불릴 때입니다. 이 장면에서 흥보는 돈이 없어 굶주리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아 매품을 살기로 약속하고, 그 대가로 닷 냥이라는 돈을 먼저 받아 집으로 돌아와 아내 앞에서 큰소리치며 ‘돈타령’을 부릅니다. 평소 변변한 벌이가 없어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했던 흥보가 모처럼 돈을 벌어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이 ‘돈타령’의 흥겨운 가락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그에게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수단을 넘어, 가족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떳떳함을 과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흥보의 기쁨 이면에는 평소 돈이 없어 가족들을 굶길 수밖에 없었던 흥보와 같은 가난한 백성들의 깊은 아픔과 서글픔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3. ‘돈타령’의 특징 및 의의

‘돈타령’이 <흥보가>를 대표하는 소리 대목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은 <흥보가> 자체가 조선 사회의 심각한 문제였던 빈부(貧富) 대립을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생생하게 형상화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는 화폐 경제의 발달 등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빈부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지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변화에 발맞춰 하층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부를 축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자신의 농토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그마저도 할 수 없어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하층 빈민들에게 돈은 그 교환 가치를 통해 직접적으로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었으며, 때로는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생살지권’을 가졌다는 ‘돈타령’의 표현은 바로 이러한 하층민들의 절실한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돈타령’의 내용은 흥보와 같은 당대 하층민들이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일종의 ‘돈’에 대한 인식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의 긍정적인 측면(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과 부정적인 측면(인간적인 가치를 훼손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힘)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돈에 대한 복잡하고 다층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돈타령’은 단순한 민요조의 노래를 넘어, 당시 사회의 경제적 현실과 그 속에서 고통받았던 민중들의 삶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아낸 귀중한 예술적 기록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 <흥보가> 중 ‘돈타령’은 돈의 외형과 속성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짧은 노래이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 후기 사회의 경제적 현실과 빈민층의 고통, 그리고 돈에 대한 그들의 복잡한 인식이 깊숙이 담겨 있습니다. 흥보의 익살스러운 몸짓과 함께 흥겹게 울려 퍼지는 ‘돈타령’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돈의 위력 앞에서 인간적인 가치가 흔들리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민중들의 강인한 삶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돈타령’은 판소리 <흥보가>의 중요한 예술적 가치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대목일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의 경제사 및 민중들의 삶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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