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춘향가(春香歌)>는 신분을 초월한 춘향과 이몽룡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수많은 청중의 심금을 울려온 한국 전통 예술의 걸작입니다. 그중에서도 ‘이별가(離別歌)’ 대목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하는 상황의 비극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핵심적인 장면으로, 춘향과 이몽룡의 애끓는 심정과 슬픔이 다양한 이별 사설과 애절한 곡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춘향가>의 여러 눈대목(가장 감동적인 대목)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높은 ‘이별가’는 작품의 서두부터 존재했던 중요한 부분이며, 시대의 흐름과 청중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어 왔습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의 정의, 개관, 내용, 특징 및 의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1. ‘이별가’의 정의 및 개관
‘이별가(離別歌)’는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부친의 명으로 한양으로 떠나게 되면서, 춘향과 슬프게 이별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소리 대목입니다. 이 대목은 춘향가의 가장 중요한 눈대목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오랫동안 청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인기는 <춘향가>가 처음 성립되던 초기부터 ‘이별가’ 대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춘향가>인 유진한(柳振漢)의 <춘향가>를 비롯하여, 신재효(申在孝)의 『남창춘향가』와 『동창춘향가』에도 ‘이별가’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기에, <춘향가>의 전승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이별가’가 끊임없이 창작되고 확대 재생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이별가’에는 연인끼리 주고받는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신물교환사설’을 비롯하여, 한자어나 시조, 가사 등의 다양한 문학 형식을 활용한 ‘이별가’들이 존재합니다.
2. ‘이별가’의 내용 분석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따르면, ‘이별가’ 대목은 모흥갑(牟興甲) 명창의 더늠(명창이 자기 특기로 만들어낸 독특한 소리 대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서편제(西便制)의 거장인 박유전(朴裕全, 1835~1906) 명창이 새롭게 창작한 더늠도 전해집니다. 『조선창극사』에 기록된 모흥갑 명창의 ‘이별가’ 더늠은 비교적 간결한 편이지만, 그 이후에 등장한 ‘이별가’들은 종류도 다양해지고 내용 또한 훨씬 길어졌습니다. 실제로 『조선창극사』에 수록된 모흥갑의 ‘이별가’ 더늠과 박유전의 ‘이별가’, 그리고 유공렬(劉公烈, 1864~1927) 명창의 ‘이별가’를 비교해 보더라도 후대로 갈수록 그 내용이 현저하게 길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녹음된 모흥갑제 <이별가>나 박유전제 <이별가>와 현재 성우향(成又香) 명창이나 조상현(趙相賢) 명창이 부르고 있는 <이별가>를 비교해 보면, 현대의 ‘이별가’가 얼마나 많은 내용이 추가되고 길어졌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화중선(李花中仙) 명창이 불렀던 모흥갑제 <이별가>는 정노식(鄭魯湜)이 『조선창극사』에서 소개한 더늠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이화중선 명창의 사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보 되련님 날 다려가오 여보 되련님 날 다려 가오
나를 잊고는 못가리다 내가 도련님다려 사자사자 헙더니까
도련님 나를 다려 사자사자 허였지요 도련님은 올라가면
나는 남원 땅으 뚝 떨어져서 뉘를 믿고 사잔 말이오
저 건네 늘어진 양류(楊柳) 깁수건을 풀어내야
한 끝은 나무 끝끝터리 매고 또 한 끝은 내 목으 짬매야
디령디령 뚝 떨어져 나를 쥑이고 가시면 갔지
살려두고는 못가리다(중모리장단)
김창룡(金昌龍) 명창이 불렀던 박유전제 <이별가> 역시 정노식이 소개한 더늠과는 길이도 짧고 내용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보 되련님 여보 되련님 나를 데려가오 나를 데려가. 쌍교 독교도 나는 싫어. 월이렁 추렁청 건너말낏 밤보담 지여 나를 데려가오. 아니 여보 되련님. 마오 그리 마오. 마오 마오 그리 마오.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되거든 오랴시오. 사해 너른 물이 육지가 되거든 오랴시오. 올날이나 일러주오. 금일송군 임가더니 장그점도조 나도 가지. 임가는디 나도 가지요. 운종룡 풍종호라. 용이 가는디 구름이 가고 범가는디 바람가지.(중모리장단)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듯이, 모흥갑제 <이별가>는 떠나려는 이몽룡에게 춘향이 자신을 꼭 데려가 달라고 간절하게 하소연하며, 만약 데려가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니 혼자서는 절대 갈 수 없다고 애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반면에 박유전제 <이별가>는 춘향이 「황계사(黃鷄詞)」의 일부를 활용하면서 ‘운종룡 풍종호(雲從龍風從虎)’라는 고사성어를 사용하여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두 명창의 <이별가>는 모두 이별의 상황에서 오직 춘향만이 이몽룡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며 홀로 노래한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런데 근세 초기의 명창인 김창환(金昌煥)은 진양조장단이라는 느리고 장중한 곡조로 <이별가>를 불렀으며, 그 내용이 길지는 않지만 이별을 앞둔 춘향과 이몽룡이 짧게나마 대화 형식으로 노래하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이별가>와 차별점을 보입니다. 이는 기존의 <이별가>와 달리 장단과 노래 방식을 새롭게 시도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선유(李善有) 명창의 <이별가> 역시 장단은 중모리장단을 사용했지만, 노래 방식을 춘향과 이몽룡의 대화 형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정정렬(丁貞烈) 명창의 <이별가>는 앞선 명창들과는 더욱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장단 운용에 있어서 중모리장단-중중모리장단-중모리장단으로 변화를 주었으며, 노래 방식 또한 창자의 평(해설)과 이몽룡의 생각, 하녀 향단과 춘향의 어머니 월매가 등장하고, 춘향의 질문과 원망 등의 다양한 형식이 나타나는 등 사설의 운용이 매우 다채롭게 바뀌면서 그 길이 또한 훨씬 길어졌습니다.
또한 송만갑(宋萬甲, 1865~1939) 명창의 <이별가>는 장단을 중모리장단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설에 대화 형식뿐만 아니라 다른 명창들과는 달리 연인 간의 정표를 주고받는 ‘신물교환사설’을 새롭게 추가하여 옥지환(玉指環)과 석경(石鏡)을 교환하는 내용을 삽입하였습니다. 특히 송만갑 명창의 <이별가>는 춘향과 이몽룡이 옥지환과 석경을 교환하면서 이별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듯한 내용이 앞부분에 나오고, 뒷부분에는 ‘올라가도 같이 가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춘향의 간절한 염원을 강조하는 내용을 덧붙여 극적인 효과를 높였습니다.
한편, 최근에 불리는 <이별가>는 장단의 운용과 그 내용이 더욱 다채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 길이 또한 매우 길어진 경향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김소희(金素姬) 명창의 <이별가>는 ‘중모리장단-평중모리장단-중모리장단-아니리-창조-아니리-평중모리장단-아니리-진양조장단-아니리-중중모리장단-중모리장단-아니리-창조-진양조장단-자진모리장단-중모리장단-자진모리장단-중모리장단-아니리-창조-아니리-진양조장단’의 매우 복잡하고 다변화된 순서로 장단이 운용됩니다. 내용 또한 이몽룡이 이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춘향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이몽룡이 하녀 향단을 만나고 춘향 앞에서 차마 이별의 말을 꺼내지 못하자 춘향이 오해하는 상황, 부친의 승진 소식을 알리고 춘향은 기뻐하며 함께 떠날 준비를 하는 이야기, 마침내 이별하자는 말을 듣고 춘향이 절망하며 죽음을 각오하는 장면, 춘향의 어머니 월매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한 사랑 싸움으로 오해하는 모습, 이몽룡은 춘향에게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는 장면, 하인 방자가 와서 떠나기를 재촉하는 상황, 춘향이 술상을 차려 이몽룡을 오리정으로 보내는 장면, 내행(임금의 행차)을 모시던 이몽룡이 방자를 통해 춘향을 다시 만나 술을 마시고 신물을 교환하는 장면, 이몽룡이 떠난 후 춘향은 슬픔에 잠겨 울다가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와 주저앉는 모습까지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전개됩니다.
이처럼 초기에는 비교적 단순하게 운용되던 장단이 내용의 변화와 함께 점차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두 사람 사이의 비극적인 이별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일어날 법한 다양한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면서 줄거리가 장황해지고, 이에 따라 작품의 전체 분량 또한 크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이별가’의 특징 및 의의
모흥갑 명창과 박유전 명창의 <이별가>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별의 안타까움을 주로 중모리장단이라는 비교적 느린 곡조에 맞춰 춘향이 홀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모리장단의 운용이 이 두 명창의 독창적인 창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근세 초기의 명창인 이화중선이나 김창환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초기 명창들은 ‘이별가’ 대목을 대체로 중모리장단에 맞춰 불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서편제의 영향을 받았는지 김창환 명창의 ‘이별가’는 진양조장단이라는 더욱 느리고 비장한 곡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일부 창자들이 이몽룡과 춘향의 비극적인 이별의 아픔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계면조(슬픈 느낌을 주는 선율)에 진양조장단을 사용하여 노래하는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서편제의 시조로 추앙받는 박유전 명창의 ‘이별가’ 더늠은 그 애절함과 처절함이 극에 달했다고 전해지는데, 김창룡 명창의 방창(앉아서 부르는 노래)을 통해 그 일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편제 ‘이별가’의 일반적인 특징에 비하면 박유전 명창의 장단 운용은 중모리장단에 머물러 있어 비극성이 다소 약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박유전 명창 특유의 절제된 감정 표현 방식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별가’ 대목은 이몽룡과 춘향의 비극적인 이별의 아픔에 대한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과 호응에 부응하기 위하여, 초기의 단순했던 형태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서사가 확장되고 다양한 장단과 삽화가 추가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장단의 운용과 다채로운 삽화의 등장은 ‘이별가’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는 곧 작품의 전체적인 길이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가’는 단순한 연인의 이별 장면을 넘어, 신분 제약이라는 사회적 현실 앞에서 겪는 사랑의 고통과 애절함을 깊이 있게 그려낸 예술적인 성취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청중들에게 사랑받아온 만큼, ‘이별가’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명창들의 창작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해 왔습니다. 초기의 간결한 형태에서 점차 서사가 확장되고 음악적 표현이 풍부해진 ‘이별가’는 <춘향가>의 비극미를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대목으로서, 한국 판소리의 예술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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