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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흥보가(興甫歌)>는 가난하지만 심성이 착한 아우 흥보와 부유하면서도 심술궂은 형 놀보라는 대비되는 두 인물을 통해 권선징악의 뚜렷한 주제와 형제간의 우애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제시하는 작품입니다. 몽골 설화에서 신라 시대 설화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기원 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흥보가>는 단순한 교훈극을 넘어, 조선 후기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인간의 탐욕,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를 해학적으로 그려내며 오랜 시간 동안 민중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본고에서는 국립민속문학사전의 심도 깊은 자료를 토대로 <흥보가>의 정의, 기원, 내용, 등장인물, 창본, 그리고 그 특징 및 의의를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전문가 수준의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1. <흥보가>의 정의 및 개관

<흥보가>는 기본적인 줄거리 구조 내에서 다양한 변이와 창자의 개입이 두드러지는 판소리 작품입니다. 핵심 내용은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흥보가 다친 제비 다리를 고쳐준 대가로 복을 받는 반면, 부자인 형 놀보는 동생을 시기하여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사회의 경제적 현실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2. <흥보가>의 기원 설화

<흥보가>의 근원 설화는 동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민담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몽골의 <박타는 처녀 설화>와 신라 시대의 <방이 설화>가 대표적입니다.

  • 몽골의 <박타는 처녀 설화>: 처마에서 떨어진 제비 다리를 고쳐준 처녀가 제비로부터 받은 씨앗에서 열린 박을 통해 부자가 되지만, 이를 시기한 이웃 처녀가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박에서 나온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는 이야기는 <흥보가>의 핵심 모티프인 선행에 대한 보상과 악행에 대한 응징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몽골의 침략 시기 또는 고려 여인들을 통해 한반도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 신라의 <방이 설화>: 가난한 형 방이가 부자인 아우에게 씨앗을 구하지만 쪄서 못쓰게 된 씨앗을 받고, 어렵게 얻은 누에마저 아우가 죽이는 등 온갖 방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새를 쫓아간 산속에서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되고, 이를 시기한 아우는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흥보가>의 선악형제담 구도와 도깨비 방망이라는 '무한재보' 모티프를 공유합니다. 이는 <흥보가>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민간 설화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 외에도 <도깨비 방망이>나 <혹부리 영감 설화>와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담들과 화소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흥보가>가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정서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흥보가>의 역사적 존재 기반

<흥보가>의 존재를 처음으로 문헌상에 알린 것은 송만재(宋晩載)의 1843년 작품인 「관우희(觀優戲)」입니다. 이 시에는 "제비가 박씨를 물고 와서 원한과 은혜를 갚으니 어진 아우와 어리석은 형을 분명히 했네. 박 속에서 괴이하게도 형형색색의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톱질 한 번 할 때마다 요란한 일이 한 번씩 벌어졌네."라는 구절이 등장하여 <흥보가>의 핵심 줄거리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또한, 19세기 초의 명창인 권삼득(權三得)이 <흥보가>의 유명한 더늠인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을 잘 불렀다는 기록은 <흥보가>가 판소리 초창기부터 활발하게 전승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순조 시대의 명창 염계달과 문석준 역시 <흥보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특히 문석준은 휘모리장단으로 <박통 속에서 돈과 쌀을 정신없이 퍼내는 대목>을 뛰어나게 연기했다고 전해집니다. 철종 시대에는 한송학과 정창업, 고종 시대에는 최상준과 김창환 등이 <흥보가>의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4. <흥보가>의 내용 분석

<흥보가>의 내용은 민담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하지만, 조선 후기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해학적인 표현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 민담적 구조: 착한 흥보의 우연한 선행과 그에 따른 행운, 그리고 악한 놀보의 가식적인 모방과 불운이라는 전형적인 '대립적 반복 모방담' 구조를 따릅니다. 이는 민담의 '흉내 내기담'에서 비롯된 것으로,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 사회 현실의 반영: 흥보와 놀보 형제의 극명한 경제적 대비는 당시 사회의 빈부 격차를 드러내며, 흥보가 품팔이와 매품팔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은 하층민의 고된 삶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놀보의 탐욕과 흥보에 대한 악행은 인정 없는 사회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 해학적 표현과 재담: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에서도 재담 소리가 가장 많은 작품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익살스러운 대화와 행동을 통해 청중에게 큰 웃음을 선사합니다. 특히 놀보를 골탕 먹이는 다양한 하층민들의 등장은 민중들의 저항 의식을 해학적으로 보여줍니다.
  • 전통적 가치관의 강조: 흥보의 착한 심성과 형을 용서하는 모습, 그리고 놀보의 악행에 대한 응징은 전통적인 온정주의적 가치관과 권선징악이라는 윤리적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5. <흥보가>의 등장인물 분석

<흥보가>의 등장인물들은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당시 사회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들로 그려집니다.

  • 흥보: 가난하지만 착하고 순수한 심성을 지닌 인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당시 민중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인간형을 반영합니다.
  • 놀보: 탐욕스럽고 심술궂은 부자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의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은 당시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놀보 캐릭터는 이후 근현대 문학 작품 속 탐욕적인 인물의 전형이 되기도 했습니다.
  • 흥보 처: 남편을 이해하고 헌신적으로 가정을 돌보는 현숙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난 속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강인한 여성상을 제시합니다.
  • 놀보 처: 남편과 마찬가지로 심술궂고 욕심 많은 성격으로 그려지며, 놀보의 악행에 동조하거나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 하층민들: 놀보의 박에서 나오는 다양한 직업의 하층민들은 놀보를 조롱하고 그의 재산을 빼앗는 역할을 하며, 민중들의 저항 의식과 연대 의식을 보여줍니다.

6. <흥보가>의 주요 창본

현대에 활발하게 전승되는 <흥보가> 창본은 박녹주제, 박봉술제, 김연수제, 강도근제, 박동진제 등이 있으며, 대부분 송만갑의 <흥보가>를 직간접적으로 계승한 것입니다. 특히 박녹주 바디는 많은 후학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박녹주 명창은 <놀보 박타는 대목> 음반을 남겼으나 소략하게 짜여 있었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으나, 제자인 박송희 명창이 이를 복원하여 현재 완질 <흥보가>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7. <흥보가>의 특징 및 의의

<흥보가>는 판소리사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특징과 의의를 지닙니다.

  • 풍부한 재담과 해학성: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재담 소리가 가장 많아 민속적인 성격이 강하며, 익살스러운 표현과 상황 설정으로 청중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이는 오늘날 창작 판소리의 담화적 구성과 표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사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흥보와 놀보의 대비되는 삶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인간의 탐욕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하층민들의 고통과 저항 의식을 대변합니다.
  • 권선징악과 전통적 가치관 강조: 착한 흥보가 복을 받고 악한 놀보가 벌을 받는다는 명확한 권선징악 구조는 전통적인 윤리 의식을 강조하며, 형제간의 우애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 민중들의 소망 반영: 가난한 흥보가 박을 통해 부자가 된다는 설정은 오랜 시간 동안 가난에 시달려온 민중들의 소망을 반영하며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송만갑의 <흥보 박타는 대목>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 판소리 음악의 다양한 면모: <중타령>, <제비노정기>, <박타령> 등 다양한 장단과 조를 사용하여 극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며, 판소리 음악의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줍니다.

 

판소리 <흥보가>는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닌, 조선 후기 사회의 현실과 민중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소망과 가치관을 생생하게 담아낸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해학과 풍자, 그리고 감동을 아우르는 <흥보가>의 매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국 전통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그 가치를 이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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