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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해소지〉는 1827년(순조 27년) 11월, 공주 감영의 공인들이 호조완문(戶曹完文)을 무단으로 탈취한 사건과 관련하여, 그들을 엄히 처벌하고 도서를 되돌려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작성된 팔도 재인(八道才人) 40명의 연명 진정서입니다. 이 문서에는 판소리의 대표적 명창인 염계달·송흥록·김계철·고수관 등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관

〈정해소지〉는 이보다 3년 앞선 1824년에 작성된 〈갑신완문(甲申完文)〉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원래 이 완문은 청양의 송일문이 보관하고 있었으나, 공주의 공인 박응선 등이 통문을 돌려 이를 무단으로 탈취하였습니다.
이 완문은 칙사(勅使)를 맞이하는 국가 행사를 위해 각 도의 소임(所任)들이 모였을 때 반드시 필요한 공문서로, 호조의 판결문이 함께 첨부된 매우 중요한 도서였습니다.
이에 팔도의 재인들은 완문을 탈취한 공인들을 엄히 다스리고, 그 문서를 되찾기 위한 요청서를 좌포청(左捕廳)에 제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정해소지〉입니다.

이 문서는 단순한 진정서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조선 후기 예인 조직인 팔도재인이 국가적 행사에 공식적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내용

〈정해소지〉의 본래 제목은 〈팔도재인등등장(八道才人等等狀)〉이지만, 문서의 말미에 적힌 ‘정해년(丁亥年) 11월 일(日) 소지(所志)’에서 이름을 따 ‘정해소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문서의 전신인 〈갑신완문〉은 칙사 영접 행사 시 각 도의 도산주(都山主)가 재인들을 이끌고 참여할 수 있도록 호조에 제출된 문서로, 관의 허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소지(所志)’란 관청에 제출하는 민원 문서로, 접수된 문서에는 관부의 판결이 여백에 기재되었는데, 이를 ‘뎨김(題音)’ 혹은 ‘제사(題辭)’라 하였습니다. 이 판결문이 첨부된 도서는 차후 행사 때마다 필요한 공식 자료로 보관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주의 공인 박응선, 최성윤, 박막대, 박응철 등이 송일문이 보관하던 완문을 불법으로 탈취하자, 이에 분노한 팔도 재인들은 이들의 죄를 엄중히 다스리고 도서를 반환해 달라는 연명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이들은 탈취 사건이 공주 감영 소속 공인들의 범행이었기 때문에, 진정서를 좌포청에 올렸습니다.

이 문서에는 당시 팔도에서 활동하던 재인 40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염계달, 송흥록, 김계철, 고수관 등 판소리사에 길이 남은 명창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어, 그들의 활동 시기와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가 됩니다.

특징 및 의의

〈정해소지〉는 팔도 재인들이 국가 행사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며, 자신들의 권리와 역할을 공식 문서로 주장한 사례로서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재인들이 단순한 예능 집단이 아니라 공식적인 직능 집단으로서 행정적 권위를 인정받았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문서는 앞선 〈갑신완문〉과 더불어, 재인들이 칙사 영접이나 산대(山臺) 배설 등 국가 의례에 깊이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특히 이 문서에 등장하는 명창들의 이름은 판소리사의 인물 연구와 전승 시기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됩니다.

요컨대 〈정해소지〉는 조선 후기 예인 사회의 자율성과 조직력, 그리고 명창들의 사회적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헌으로서 판소리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 이혜구, 「송만재의 관우희」, 30주년 기념 논문집, 중앙대학교, 1955년
  • 박헌봉, 창악대강, 국악예술학교출판부, 1966년
  • 김동욱, 한국가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61년
  • 김동욱, 한국가요의 연구-속, 삼우사,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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